[취재수첩]주목받지 못하는 죽음들.. 위험한 임업현장 :::::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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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주목받지 못하는 죽음들.. 위험한 임업현장


<주목받지 못하는 죽음들>

산업안전보건공단 홈페이지에는 ‘사망사고 속보’가 올라옵니다. 전국 산업 현장에서 발생한 중대재해 현황인데, ‘속보’라는 형식답게 신속하게 공개해도 문제 되지 않을 법한 정보만 한 줄 남짓 적혀 있습니다.

‘[2/25, 홍천] 벌목 작업 중 나무에 맞음’, ‘[12/3, 인제] 넘어지는 벌도목에 끼임’

사회적으로 이목을 끌지 않는 한, 이 속보의 후속은 기대하기 힘듭니다. 강원도 어느 산속에서 일어난 재해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벌목 작업 중 나무에 맞음.’ 이 한 줄에는 사회적 이목을 끌 만한 어떤 요소도 없습니다. 지방의 어느 산골에서 으레 발생할 법한 그런 정도의 일입니다. 이렇게 전국 산림에서 발생하고, 잊히는 재해만 연간 천 건에 달합니다.




<주관 사업장 재해 현황도 모르는 산림청?>

산업안전보건공단의 ‘속보’를 추적해 보니, 일부 공통점이 보였습니다. 재해 현장이 산림청이 발주하는 숲가꾸기 사업장이었습니다. 산림청에 주관 사업장에서 발생한 임업재해 현황을 정보공개 청구해 봤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답변이 예상 밖이었습니다. 자료가 없다는 겁니다. 그즈음 산림청은 숲가꾸기 사업장에서 안전 관리 강화를 공언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현장에서 누가, 왜 죽고 다치는지조차 모르면서 어떻게 안전 관리를 강화하겠다는 걸까,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사망사고 속보’의 후속을 쓴다는 마음으로 취재에 들어갔습니다.




<위험한 숲가꾸기 현장>

우선, 재해가 발생했던 산림청 숲가꾸기 사업장으로 향했습니다. 임도도 없는 숲속을 한참 헤맨 뒤에야 도착한 현장에는 밑동만 남은 나무와 페인트로 표시된 나무가 드문드문 보였습니다. 맨몸으로 이동하기도 버거운 이곳에서 수십 미터에 달하는 나무를 자르고, 나르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어떤 노동자는 쓰러지는 나무를 미처 피하지 못했고, 어떤 노동자는 낭떠러지 아래로 추락했습니다. 또, 어떤 노동자는 굴착기로 나무를 옮기다가 40도에 달하는 가파른 경사에서 굴러떨어졌습니다.




<‘개인’이 각별히 조심해야..>

“위험한 현장이다.”,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임업 현장을 다니면서 자주 들었던 말입니다. 모든 산업 현장에는 위험 요소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현장마다 그에 맞는 재해 예방과 대처 방안이 있습니다. 그런데, 임업 현장에서는 그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 현장 관계자는 산림은 다른 산업 현장처럼 정형화돼 있지 않아서, 효과적인 안전 조치를 하기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각자가 조심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취재를 거듭할수록 재해가 잇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안전모도 사기 어려워..”>

 임업 노동자는 특수 제작된 안전 장비를 착용합니다. 안전화의 밑창에는 미끄럼을 막는 ‘징’이 박혀 있고, 안전복은 기계톱날을 막을 수 있게끔 만들어집니다. 일반 건설 현장에서 사용하는 장비보다 많게는 10배 이상 비싸고 종류도 많은데, 작업 환경이 험하다 보니 내구연한은 짧습니다. 그런데, 산림청 사업을 수행하는 사업장 관계자는 안전모조차 제때 사기 어렵다고 토로했습니다. 산림청에서 책정하는 안전 비용이 너무 적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사정을 알아보니, 산림청의 안전 비용 책정 방식이 다소 불합리했습니다. 산림청은 발주 사업 예산 가운데 인건비와 재료비를 합한 금액의 1.85%를 안전 비용으로 쓰도록 하고 있습니다. 영세한 사업장이 많은 임업 현장에서는 안전 비용이 극히 제한되는 구조였습니다. 그런데, 이마저도 건설 현장의 여러 기준 가운데, 가장 낮은 기준을 기계적으로 적용한 것이었습니다. 임업현장의 특수성이 반영되지 않은 겁니다.

산림청은 이에 대해 “지난해부터 1.85%인 안전 비용 요율을 올리려고 검토 중이다”라면서도, 임업현장에 맞는 기준을 정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했습니다. 산림청은 수십 년째 산림 사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중대재해처벌법’ 이 시행되고 나서야 현장에 맞는 안전 비용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안전 장비조차 제대로 살 수 없다면, 다른 안전 조치는 언감생심일 수밖에 없는데도 말입니다.




<생존 가능성 낮추는 ‘나홀로 작업’>

필요한 건 안전 장비뿐만이 아닙니다. 산림 사업은 축구장 수십 개 면적에서 진행됩니다.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도 많아 작업 중 사고가 발생해도, 즉시 발견될 가능성이 매우 낮은 환경입니다. 그래서 2인 1조 작업이 필요합니다. 함께 움직이면서 위험 요소를 서로 살피고, 재해가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위험성 때문에 산림청을 비롯한 일부 기관에서는 2인 1조 작업을 원칙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현장에는 ‘나홀로 작업’이 만연했습니다. 그 결과, 사망자의 70% 이상이 ‘나홀로 작업’ 중 사고를 당했습니다. 이런 경우 사고 시간도 불명확할뿐더러 사고 원인도 추정에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장 관계자들은 나홀로 작업의 이유로 ‘공사 기간’을 꼽았습니다. 뿔뿔이 흩어져 일해야 기간 안에 작업을 끝낼 수 있다는 겁니다. 산림청 사업을 수행하는 한 관계자는 현장 사정상 공사가 늦어져, 기간 연장을 요구해도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에 기간 연장 대신 작업을 서두르기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공사 기간이 짧아질수록 수익이 늘어나니, 뿔뿔이 흩어져 일하면서 작업 속도를 높이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산속이라는 작업 특성상 2인 1조 작업이 잘 이루어지는지 관리하고 감독할 체계는 없었습니다.




<병원까지 2시간.. 골든타임 실종>

이처럼 나홀로 작업중 사고를 당해 발견이 늦어지면, 구조도 늦어집니다. 올해 초 소방청에서는 자료를 하나 발표했습니다. 코로나19가 유행하던 때, 환자 신고부터 병원 이송까지 걸리는 시간이 23분에서 30분으로 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임업 현장은 어떨까 궁금했습니다. 고용노동부의 재해조사 의견서와 관할 소방서 취재를 종합해 산림청 주관 사업장의 구조 시간을 알아봤습니다. 무려 2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임업 현장은 깊은 산속이라 통신기기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고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구조대가 재해 현장을 찾아가기도 어렵습니다. 같은 산속이어도 등산객을 구조할 때는 이정표가 있어서 곧바로 현장까지 갈 수 있지만, 임업 현장에는 장소를 특정할 수 있는 어떤 이정표도 없습니다. 게다가 구조 장비를 갖고, 숲길을 헤쳐 올라야 하니, 체력적으로 힘이 듭니다.

현장에 도착했는데, 다행히 헬기가 접근할 수 있으면 구조 시간은 다소 단축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헬기가 착륙 가능한 지점과 치료가 가능한 병원을 찾고 있자면, 골든타임은 이미 훌쩍 지나기 일쑤입니다. 일찍 구조돼 병원으로 옮겨졌다면 살 수도 있었을 안타까운 생명이 죽는 겁니다. 소방 관계자는 산림에서 작업하기 전에, 정확한 위치와 작업 내용, 인원을 미리 소방에 신고하는 체계라도 갖출 수 있게 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사망자 고령 비정규직이 다수>

앞서 산림청은 취재진에게 주관 사업장에서 발생한 재해 현황을 파악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취재 중 산림청이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난해부터 주관 사업장의 재해 정보를 생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해당 자료를 꼬집어 다시 정보공개를 청구했고, 거의 한 달이 지나서야 자료를 받아볼 수 있었습니다.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올해 5월 사이 산림청 주관 사업장에서 발생한 재해는 100건이 넘었습니다. 이 가운데 90명 가까이가 비정규직이었습니다. 예상 가능한 수치였습니다. 산림청이 사업을 발주하는 사업장은 대부분 영세합니다. 사업 때마다 일용직 등 기간제 노동자를 알음알음 채용하고 있다 보니, 다치는 사람들도 대부분 비정규직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임업현장에서 중대재해로 사망하는 이들의 대부분이 5, 60대였고, 70대도 더러 있었습니다. 현장 관계자는 일은 힘들고, 처우는 좋지 않으니 새로운 인력이 들어오지 않으려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 보니 재해가 잇따르는 위험한 현장에 고령 노동만 남게 된 상황이었습니다.




<노동계, “삼림청이 위험을 외주화”>

노동계는 산림청이 위험을 외주화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재해가 빈발하는 산림 사업을 수십 년째 영세한 사업장에 발주하면서, 이렇다 할 안전대책조차 마련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현재 고용노동부도 산림청의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를 수사하고 있습니다.

물론, 지자체와 기업, 개인 산주도 산림에서 각종 사업을 진행하는 만큼 모든 임업 재해의 책임이 산림청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산림청은 국내 산림을 책임지는 최고 기관이자, 매년 수천억 원을 들여 산림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최대 발주처이기도 합니다. 그런 만큼 산림청이 나서 임업 현장의 안전 기준을 바로 세울 의무가 있습니다. 현장에 맞는 안전 대책이 시급히 마련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재해는 반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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